영어 표현
영어 표현 모음: 상황별 말고 ‘기능별’로 외워야 입이 트입니다

영어 공부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상한 경험을 합니다. 단어도 알고 문법도 알고 영어 표현 모음 파일도 휴대폰에 몇 개씩 저장해 뒀는데, 막상 외국인 앞에 서면 입이 안 떨어집니다. 머릿속에 표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있는데 꺼내지지 않는 것입니다.
원인은 대부분 정리 방식에 있습니다. 시중의 표현집은 ‘공항에서’, ‘호텔에서’, ‘식당에서’처럼 상황별로 묶여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대화의 99%가 공항도 호텔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 대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기능입니다. 반응하기, 생각할 시간 벌기, 부드럽게 말하기, 동의하고 반대하기, 대화 이어 가기. 이 글은 영어 표현을 그 다섯 가지 기능으로 다시 묶었습니다. 상황별 표현 200개보다 기능별 표현 20개가 훨씬 많이 쓰입니다.
상황별로 외우면 안 되는 이유
상황별 표현집이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상황에 가야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항 표현 50개’를 외워도 1년에 두 번 쓰고, 그마저도 요즘은 키오스크가 해결합니다. 반면 “잠깐만요, 생각 좀 하고요”에 해당하는 표현은 대화할 때마다 필요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더 중요합니다. 상황별 표현은 대개 완성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Could I have a window seat, please? 같은 문장은 통째로 외워서 통째로 꺼내는 수밖에 없고,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쓸 수 없습니다. 반면 기능 표현은 조립 부품입니다. I'd say…, Actually,…, I mean… 는 뒤에 무엇이 오든 붙습니다. 부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보는 상황에서도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원어민의 실제 말투와 관련이 있습니다. 원어민의 대화를 받아써 보면, 내용어보다 이런 기능어가 훨씬 자주 등장합니다. Right., I mean…, kind of, you know, Yeah, no, totally. 교과서 영어가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내용은 맞는데 그 사이를 메우는 말이 하나도 없어서, 로봇이 낭독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목표는 표현을 많이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능마다 두세 개씩만 확실하게 입에 붙이는 것입니다. 다 합쳐서 열다섯 개 정도면 대화의 뼈대가 잡힙니다.
1. 리액션 표현 — 듣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한국인 학습자가 가장 크게 손해 보는 부분입니다. 한국어 대화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네’, ‘아’ 정도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영어권 대화에서는 듣는 사람이 소리를 내서 반응해야 합니다. 조용히 듣고 있으면 예의 바른 게 아니라 관심 없거나 이해 못 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 놀랄 때: No way! / You're kidding! / Seriously? / Wow, really?
- 좋은 소식에: That's awesome. / That's great news. / Good for you! (상대가 잘된 일에 축하할 때)
- 안 좋은 소식에: Oh no. / That's rough. / I'm sorry to hear that. / 친한 사이면 That sucks.
- 공감할 때: Same here. / I know what you mean. / Tell me about it. (‘내 말이’에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 맞장구: Right. / Exactly. / For sure. / Absolutely. / Makes sense.
주의할 점 두 가지. 첫째, Really? 를 평평하게 말하면 ‘진짜야?’가 아니라 ‘그게 사실이야?’라는 의심으로 들립니다. 끝을 올려야 합니다. 둘째, Oh my god을 모든 반응에 쓰지 마십시오. 한국인 학습자가 가장 많이 남용하는 표현이고, 실제로는 꽤 강한 반응입니다.
그리고 Good for you. 는 말투에 따라 정반대가 됩니다. 밝게 말하면 축하지만, 낮고 평평하게 말하면 ‘그래서 어쩌라고’가 됩니다. 처음에는 확실히 밝게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2. 시간 버는 표현 — 침묵을 없애는 도구
영어로 말할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문장이 생각나지 않아 멈추는 순간입니다. 한국어라면 ‘어… 그러니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벌 수 있는데, 영어로는 그 소리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그냥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영어권 화자는 그 침묵을 ‘내 차례’로 해석하고 말을 가져갑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 생각할 때: Let me think. / Let me see. / Give me a second. / Hold on.
- 질문을 받고: That's a good question. / Hmm, that's tricky. (답을 준비하는 몇 초를 벌어 줍니다)
- 단어가 안 떠오를 때: How can I put it? / How do I say this? / What's the word… / It's like… you know…
- 말을 고쳐 말할 때: I mean… / Or rather… / What I'm trying to say is…
- 문장을 시작하는 완충어: Well,… / So,… / Actually,… / Right, so…
한 가지 사소하지만 효과가 큰 팁이 있습니다. 망설일 때 내는 소리를 ‘어’가 아니라 ‘um’ 또는 ‘uh’로 바꾸십시오. 한국어의 ‘어…’ 는 영어 대화 속에서 이질적으로 들리고, 듣는 사람이 순간 멈칫합니다. 소리 하나만 바꿔도 훨씬 매끄러워집니다.
그리고 What's the word… 는 단순한 시간 벌기 이상입니다. 이 말을 하면 상대가 같이 단어를 찾아 줍니다. 모르는 걸 숨기는 대신 공유하면, 대화가 끊기는 대신 이어집니다.

3. 부드럽게 만드는 표현 — 완곡어법
한국어는 어미로 공손함을 만들지만 내용 자체는 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이게 맞아요” 처럼요. 이 화법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That's wrong., This is correct. 가 되는데, 영어에서는 상당히 공격적으로 들립니다. 영어의 공손함은 어미가 아니라 단정의 강도를 낮추는 장치에 들어 있습니다.
- 의견을 낮출 때: I think… / I'd say… / It seems like… / From what I understand…
- 강도를 줄일 때: kind of / sort of / a bit / a little. — It's a bit expensive. 는 ‘비싸다’를 훨씬 부드럽게 만듭니다.
- 틀릴 여지를 남길 때: I could be wrong, but… / Correct me if I'm wrong, but… / I'm not 100% sure, but…
- 부탁할 때: Could you…? / Would you mind…? / Do you think you could…? / 가볍게는 Could I just ask you something quickly?
- 솔직하게 말하기 전에: To be honest,… / To be fair,… / If I'm being honest,…
다만 과하면 역효과입니다. Well, maybe I think it could possibly be a bit… 처럼 완충 장치를 네 개씩 쌓으면 자신 없는 사람처럼 들리고, 회의에서는 의견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문장 하나에 완충 표현은 하나면 충분합니다.
공손하게 말하는 법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영어 존댓말 글에서 이어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4. 동의와 반대 표현
동의는 쉽습니다. 어려운 건 반대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학습자는 여기서 두 가지 정반대의 실수를 합니다. 너무 직설적이거나, 아예 반대를 못 하거나.
동의할 때는 강도를 나눠 쓰면 좋습니다. I totally agree. (강함) → That makes sense. (보통) → Yeah, I can see that. (약함) → Fair enough. (‘뭐, 그럴 수 있죠’에 가까운, 완전 동의는 아닌 수긍). You've got a point. 는 ‘일리가 있네요’로, 이어서 반대 의견을 낼 때 특히 유용합니다.
반대할 때 영어는 거의 항상 먼저 인정하고 나서 반대합니다. 이 순서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I see what you mean, but…
- I get that, but I'm not sure…
- That's one way to look at it. Another way is…
- I'm not sure about that. (가장 부드러운 반대. 한국어의 ‘글쎄요’에 가깝습니다)
- I'd actually disagree there. (분명하지만 무례하지 않은 반대)
피해야 할 표현도 있습니다. I don't agree. 는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맥락 없이 던지면 단호하게 들립니다. I have a different opinion. 은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를 직역한 문장으로, 원어민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You are wrong. 은 웬만하면 쓰지 마십시오. 대신 I'm not sure that's right. 이면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반대를 전혀 못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영어권 회의에서 계속 Yes만 하면 겸손하다고 보지 않고 의견이 없다고 봅니다. I see your point, but… 한 문장만 자동으로 나오게 만들어 두면 이 문제의 절반이 해결됩니다.
5. 대화를 이어가고 마무리하는 표현
대화는 시작보다 이어 가는 것이 어렵고, 이어 가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한국인 학습자의 영어 대화가 어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마무리 표현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듣고 싶을 때: Go on. / And then? / What happened next? / Tell me more about that. 질문을 하나 더 얹는 것도 좋습니다. How did that go? / How was it?
못 알아들었을 때: Sorry, could you say that again? / Sorry, I didn't catch that. / What do you mean by…? 여기서 중요한 것: One more time, please. 는 한국식 영어이고, What? 은 무례하게 들립니다. Pardon? 은 괜찮지만 약간 격식 있는 느낌입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건 Sorry, what was that? 입니다.
확인할 때: So, what you're saying is… / You mean…, right? 이 표현은 이해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생각할 시간도 벌어 줍니다.
화제를 바꿀 때: By the way,… / Speaking of which,… / That reminds me… / Anyway,…
마무리할 때: Anyway, I should get going. / It was really nice talking to you. / Let's catch up soon. / Have a good one! 여기서 자주 틀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헤어질 때는 Nice to meet you가 아니라 Nice meeting you 또는 Nice talking to you 입니다. Nice to meet you는 만나는 순간에 쓰는 인사입니다.
짧은 대화 전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짧은 영어 대화문에서 예시로 볼 수 있고, 문장 단위 연습은 실전 영어 회화 문장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실제로 입에 붙이는 법
여기까지 읽고 표현을 다 저장해 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글의 표현은 대략 60개인데, 60개를 다 외우려는 순간 하나도 안 나옵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방법은 반대입니다.
- 기능당 두 개씩만 고르십시오. 다섯 기능 × 두 개 = 열 개. 이게 오늘 외울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오면 됩니다.
- 시간 버는 표현부터 시작하십시오. 다섯 기능 중 효과가 가장 즉각적입니다. That's a good question. 와 Let me think. 두 개만 자동으로 나와도 대화가 끊기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 드라마를 멈추고 리액션을 넣으십시오. 미드를 보다가 등장인물이 뭔가 말하면 일시정지하고,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소리 내어 반응합니다. No way! / That's rough. 하루 10분이면 충분합니다.
- 한국어로 한 말을 영어 부품으로 바꿔 보십시오. 오늘 ‘글쎄요’라고 한 순간을 떠올려 I'm not sure about that. 로 바꿔 말해 봅니다. 상황이 아니라 기능으로 묶는 연습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람에게 써 봐야 합니다. 리액션은 상대의 표정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Really? 가 의심처럼 들렸는지, Good for you. 가 비꼬는 것처럼 들렸는지는 혼자 연습해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CoffeeTalk은 짧은 대화로 원어민과 연결해 주는 앱인데, 이 글의 표현들은 특히 여기서 빨리 붙습니다. 5분 대화 한 번에 리액션 표현은 열 번 넘게 쓸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주제를 일상이나 취미로 정해 두면 시간 버는 표현과 맞장구 표현이 저절로 나옵니다.
표현을 더 넓히고 싶다면 일상 영어 회화 표현과 영어 관용구를, 문장을 통째로 쌓고 싶다면 매일 쓰는 영어 문장을 이어서 보시면 됩니다.

FAQ
영어 표현은 몇 개나 외워야 하나요?
많이 외우는 것보다 기능별로 적게 외우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리액션, 시간 벌기, 완곡하게 말하기, 동의와 반대, 대화 이어가기 다섯 기능에 각각 두 개씩, 총 열 개만 자동으로 나오게 만들면 대화의 뼈대가 잡힙니다.
영어로 말하다가 막힐 때는 어떻게 하나요?
침묵하지 말고 시간 버는 표현을 쓰십시오. Let me think. / That's a good question. / How can I put it? / What's the word... 영어권 화자는 침묵을 대화 차례가 넘어온 신호로 해석하기 때문에,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말할 기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영어로 반대 의견을 말할 때 무례하지 않으려면?
먼저 인정하고 나서 반대하는 순서를 지키면 됩니다. I see what you mean, but... / I get that, but I'm not sure... / You've got a point, but... I don't agree.나 You are wrong.은 맥락 없이 쓰면 단호하게 들립니다.
듣기만 하고 리액션을 안 하면 안 되나요?
영어권 대화에서는 문제가 됩니다.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듣는 사람이 소리를 내서 반응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조용히 듣고 있으면 공손함이 아니라 관심이 없거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Right. / Exactly. / No way! 정도만 섞어도 충분합니다.
헤어질 때 Nice to meet you라고 하면 되나요?
아닙니다. Nice to meet you는 처음 만나는 순간의 인사이고, 헤어질 때는 Nice meeting you 또는 Nice talking to you를 씁니다. 여기에 It was really nice talking to you. / Let's catch up soon. 정도를 붙이면 자연스럽게 마무리됩니다.